베른트 슈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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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른트 슈나이더는 독일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2 분데스리가의 FC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뛰며 분데스리가 준우승 2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를 경험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200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독일 대표팀의 준우승과 3위를 이끌었으며, 2008년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스카우트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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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트 슈나이더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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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베른트 슈나이더 |
출생일 | 1973년 11월 17일 |
출생지 | 예나, 동독 |
신장 | 1.76m |
포지션 | 미드필더 |
클럽 경력 | |
유소년 클럽 | 1980–1983: BSG 아우프바우 예나 1983–1991: 카를 차이스 예나 |
소속팀 | 1991–1998: 카를 차이스 예나 1998–1999: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99–2009: 바이어 레버쿠젠 2009: 바이어 04 레버쿠젠 II |
출장 | 1991–1998: 158 1998–1999: 33 1999–2009: 263 2009: 8 |
득점 | 1991–1998: 21 1998–1999: 4 1999–2009: 35 2009: 1 |
총 출장 | 462 |
총 득점 | 61 |
국가대표 경력 | |
청소년 국가대표팀 | 독일 U-18: 2경기 0골 |
국가대표팀 | 독일 B: 4경기 1골 독일: 81경기 4골 |
국가대표팀 연도 | 1999–2001: 독일 B 1999–2008: 독일 |
수상 내역 | |
소속팀 | 바이어 레버쿠젠 |
준우승 | DFB-포칼 2002 UEFA 챔피언스리그 2002 DFB-포칼 2009 |
국가대표팀 | 독일 |
준우승 | FIFA 월드컵 2002 |
3위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5 FIFA 월드컵 2006 |
2. 클럽 경력
슈나이더는 FC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바이어 04 레버쿠젠에서 은퇴했다.
FC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2부 리그 데뷔 후, 1998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여 33경기에 출장했지만 팀은 15위에 그쳤다. 1999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여 미하엘 발라크, 옌스 노보트니와 함께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1999-00 시즌과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 2001-0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2003-04 시즌에는 개인 최다 득점인 10골을 기록했다. 이후 부상으로 2008-09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고, 2009년 은퇴를 선언했다.
2. 1. FC 카를 차이스 예나
슈나이더는 튀링겐주 예나에 위치한 지역 클럽인 FC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며, 2부 리그에서 5시즌 동안 활약했다.[4] 그의 데뷔는 1991년 8월 13일 다름슈타트 98과의 경기였으며, 10분 가까이 출전하여 1-3으로 패배했다. 2009년 5월 29일, FC 카를 차이스 예나는 그를 클럽 회장 피터 슈라이버의 멘토로 임명했다.[10]2. 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98년 1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여 첫 경기에서 데뷔하였다. 33경기에 출장하였으나, 팀은 강등을 면하고 15위에 머물렀다.[30]2. 3.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9년, 바이어 04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여 주전 자리를 꿰찼다. 미하엘 발라크, 옌스 노보트니와 함께 팀의 핵심 선수로 활동하면서, 1999-00 시즌과 2001-02 시즌의 분데스리가 준우승, 2001-02 시즌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공헌하였다.[4] 특히 2001-02 시즌에는 11개의 도움을 기록했고 5골을 넣기도 했다. 또한 팀이 2002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19경기에 출전했다. 2003-04 시즌에는 자신의 최다 득점인 10골을 리그에서 기록하여 요한 미쿠와 함께 그 해 최다 득점 미드필더가 되었다. 레버쿠젠은 3위를 차지했고, 다음 시즌 슈나이더는 4년 계약을 연장했다.[5]60경기에서 10골과 18도움을 기록한 후 2시즌 동안 슈나이더는 연이은 부상을 당했다. 먼저 종아리 부상을 입었고,[6] 이후 허리 부상으로 2008-09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다.[7] 2009년 5월 16일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20분 출전하여 5-0 승리에 기여하며 복귀했다. 그러나 다음 달,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그는 은퇴를 발표했다.[8][9] 2009년 6월부터 바이어 레버쿠젠의 스카우트로 일하기 시작했다.[11]
3. 국가대표팀 경력
슈나이더는 199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국제 무대에 데뷔하여, 뉴질랜드전(2-0 승)과 미국전(0-2 패)에 출전했다.[12] 이후 UEFA 유로 2000에는 선발되지 못했지만, 2001년 루디 푈러 감독의 눈에 띄어 우크라이나와의 2002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여 독일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공헌하였다.
그는 활동량과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요아힘 뢰프 감독 체제에서도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UEFA 유로 2004에 출전했다. UEFA 유로 2008에는 척추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독일 대표팀에서 통산 81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했다.
3. 1. 2002년 한일 월드컵
199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국제 무대에 처음 데뷔했지만, UEFA 유로 2000 선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12] 2002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루디 푈러 감독에게 발탁되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독일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는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조별 예선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1골을 기록하고 3개의 도움을 기록하는 등[30] 독일 대표팀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3. 2. 2006년 독일 월드컵
슈나이더는 2002년 월드컵에 이어 독일에서 개최된 2006년 FIFA 월드컵에도 독일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였다. 미하엘 발락, 토르스텐 프링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함께 강력한 미드필더진을 구축하여 독일 대표팀의 선전에 기여하였다.[13] 발락이 부상으로 결장한 코스타리카와의 개막전에서는 팀 주장을 맡았으며,[13]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에콰도르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조 1위를 확정지었다.3. 3. 유로 2008과 은퇴
슈나이더는 디스크 탈출증 수술로 인해 유로 2008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14] 그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81경기에 출전한 후 은퇴했으며, 2008-09 시즌을 마지막으로 만성적인 허리 부상으로 은퇴하였다.[31] 은퇴 후에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스카우트를 맡게 되었다.[32]4.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친정팀 FC 카를 차이스 예나 회장 페터 슈라이버의 어드바이저와 바이어 레버쿠젠의 스카우트를 맡게 되었다.[32]
5. 플레이 스타일
20대에는 뛰어난 발재간을 살린 변화무쌍한 볼 컨트롤과 날카롭고 정확한 크로스로 "흰 피부의 브라질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33] 이후에는 오른쪽 사이드 하프뿐만 아니라 좌우 사이드백,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윙어까지 소화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진화했다. 높은 전술 이해도를 바탕으로 중용되었으며, 여러 차례 주장을 맡기도 했다. 정확한 킥 능력으로 프리킥을 자주 담당하기도 했다.
6. 개인사
슈나이더는 카리나와 결혼하여 딸 에밀리와 아들 조바니를 두었다.[15]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독일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져와 호텔에서 플레이하려 했으나, 일본과 유럽의 기기 호환성 문제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프런트에 항의한 적이 있다. 취미는 승마 경주 관람이다. 프로 축구 선수로서는 드물게 골초였다.
7. 에피소드
-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독일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져와 호텔에서 플레이하려 했으나, 일본과 유럽의 기기 호환성 문제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프런트에 항의한 적이 있다.[1]
- 취미는 승마 경주 관람이다.[2]
- 프로 축구 선수로서는 드물게 골초였다.[3]
8. 수상 내역
(바이어 레버쿠젠)
(독일)